사진의 본질에 대한 연구와 변화하는 공간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작업으로서, 역사라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속에 우리는 어떠한 얘기를 하고 있는 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여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을 여행해 본적이 없던 나는 안국동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영어로 제작된 낯선 여행 책과 리플렛을 가지고 다니며 해외여행객처럼 서울을 돌아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보았던 낯선 서울의 모습을 발견했고, 이 장소가 이전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여행 이후 옛 사진들을 찾고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이 장소가 내가 살고 있는 지금현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속에도 누군가가 ‘있었던’ 장소이었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때 당시와 달라진 공간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공허하고, 무엇인가가 부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해서 여러 층위들의 자료들을 모으며 생겨난 감정들, 그리고 중요한 기록들을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생각했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현장감, 작업을 진행하는 도중에 생기는 관중들 또한 이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이 작업을 통해 숨 가쁘게 변하는 오늘의 풍경 속에서 과거에 대한 기억을 묻고 있다. 역사적 장소에 과거 그곳의 실재이미지를 겹쳐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공간과 시간의 역학 관계에 대해서도 탐색한다. 우리는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싶을 때 그 경험의 장소를 찾는다. 그 공간의 이야기를 음미하며 잊고 지냈다가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이다. 장소는 기억을 지배하고 , 기억은 의식을 지배한다. 민의 분출과 관련한 한국사의 영욕이 밀도 높게 압축되어 있는 곳들, 초라한 서울 시의회가 가벼이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원형을 잃어버린 것 그리고 문화유산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환경이 변해버린 것들을 발견하고 찾아보며 그것들과 관련된 우리의 기억들과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쉼 없이 변화하고 변화되는 이 도시 속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간절한 답을 얻기 위해 지금껏 이 땅위에 존재했던 사람들과 콘크리트가 덮이기 전 과거의 땅의 모습을 보며 시대의 흐름으로 인하여 생겨난 많은 감정들과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곧 “나는 어떤 것들에 의해 사로잡혀 있는가?”와 같다.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나아가는 작업의 과정들을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마음속에 존재하는 역사 속 현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누구 이고, 어떠한 주체가 되어 있는 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 되고자 한다.
historic present018
전면의 둥근 곡면은 웅장한 크기로 남아 있지만, 그 밑 주차장에는 언제 상영할지 모르는 자동차 극장 스크린이 어설픈 모습으로 덩그라니 놓여 있고 택배회사의 트럭들이 즐비하다. 원형 구멍으로 흘러 들어와 자유를 갈망하던 빛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면서, 반공을 외치던 이곳은 이제 웨딩홀이 되어 버렸다. 화려한 불빛들로 장식된 모습을 보면 애초부터 이곳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잊히고 버려지는 이 시대에서 역사는 현대문명의 현주소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