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지
영상 앞에 마주하는 순간, 관람객들의 앞에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가상현실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들은 영상 속의 또 다른 자아가 이끄는 대로 기꺼이 그 여행에 동참한다. 지하벙커를 지나 영화관에 앉으면 그 때부터 이 독특한 동반 여행은 시작된다. 맨 처음 펼쳐지는 것은 바다이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그 너머 수정 동굴에 닿을 때까지 자유로이 헤엄친다. 동굴을 빠져나오면, 우리는 또 다시 바다의 품 안에 있다. 그런데, 바다 밑바닥에 이상한 것이 보인다. 색동무늬의 나선형 기둥을 순식간에 미끄럼틀 마냥 타고 오르락 내리락 즐겁게 노는가 싶더니 갑자기 화면 속의 풍경은 숲이 되었다가, 또 수영장이 된다. 호기롭게 다이빙대로 뛰어 내리고, 다시 우리는 숲에 있다가, 공장에 있다가, 다시 무엇으로 정의할 수 없는 공간으로 이동한다.
이 세상에 당신을 위한 ‘완벽한 집’, ‘완벽한 공간’은 존재할 수 있을까? 완벽이라는 개념은 그 뿌리부터가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절대적인 만족을 가져다 주는 그 어떤 것도 실제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가상 세계’가 생겨났다. 아도르노는 가상이란, 가능할 수 있는 이성의 모습과 현실의 비이성이라는 모순에 찬 두 대립적 현상의 통합체라고 말했다. 즉, 상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옮겨놓은 세상이 ‘가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안성석 작가는 가상 세계에 자신만을 위한 완벽한 집을 만들었다. <권할 만한 여행>은 가상의 세계에 자리한, 그를 위한 완벽한 공간이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모든 풍경은 작가가 실제로 방문했고, 그 방문을 통해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지역이 된 작가적 공간이다. 그로 말미암아 본래의 지리적 공간은 그의 기억이 더해지면서 장소가 된다. 그는 자신이 만든 세계 안에서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고,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일종의 신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본인이 실제로 즐기는 활동들을 자유롭게 행하고, 그리고 그 장소들을 아무 제약 없이 드나든다. 그리고 관람객에게도 자신의 그 신나는 여행을 함께 하기를 권한다. 이 여행을 통해 관람객들은 작가의 유토피아를 간접적이면서도 직접적으로 체험한다. 그들의 여행은 방문한 공간이 실재하지 않으며, 자신의 경험도 실제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간접적이라 말할 수 있고, 자신의 시점에서 직접 공간을 탐사한다는 점에서 직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여행 경험은 그들이 자신만의 이상적인 집을 실체화할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안성석
여행 프로모션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영상으로, 실제 물리적 이동에 따른 여행이 아닌 가상으로의 끊임없는 이동으로의 여행을 제시 하고 있다. 세계관, 지도, 역사, 사람들의 형태, 문화, 지리 국가를 초월한 세계. 능동적 사이버 게임 공간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퍼스 기호학을 통해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그 구조를 논의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 재현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 작업은 진화하는 게임속 등장하는 비물질적 공간과 예술 간의 새로운 구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진화하는 컴퓨터 게임과 미래의 예술에 대한 하나의 전망을 비춰본다. 기술문명의 진보는 예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면서, 이제 예술의 영역은 프로그래밍 데이터 속 새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의 존재 조건까지 변화시키는 이러한 인류 문명의 진보된 현상들 속에서 예술의 영역과 연동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할 것이며 거기서 탄생한 예술 장르들 중 하나인 '게임'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삶과 예술의 긴밀한 상호작용적 활동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 새로운 장르의 전시를 통해 삶과 예술의 가치를 견지하면서 그 가치의 미래지향적인 의의 또한 얻고자 한다. 권할만한 여행_2013에서 선보이는 여러 장면은 혼합된 꿈의 역사를 다룬다. 이번 작품, Advisable trip 권할만한 여행은 이전 작품들인 Coexiestence of things 와 historic present 시리즈들과 함께 일정 부분이 한 축으로 공유되어 있다. 지난 작업들을 하면서 겪어왔던 일종의 언캐니한 경험들;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풍경 보다 더 생생하고 실감나는 디지털 이미지 환경 속의 혼란-이 여전히 나의 세계를 확장 시켰다. 내가 가진 어떤 능력 혹은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특정한 지역을 답사하기 전 인터넷에 떠도는 무수한 정보자료들과 온라인 지도를 통해 습득하여 가상으로 그 지도 속에 들어가 가상의 구상도를 그리고 최적의 뷰를 확보한다. 내가 제작한 작품은 ‘머시니마‘라고 불리 우는데 이것은 기존 게임과 게임엔진을 이용해서 만든 형태를 부르는 것이다. 일정한 규칙과 제한적 시스템에 기초를 두고, 대개는 '프로그래밍'되고 사전에 이미 '가공된' 상태의 쌍방향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양림동이라는 특수한(작가에게) 지역의 방문을 통해 생성된 작가적 공간이고 이는 물질적 공간이 아닌 여러 층으로 나뉜 비물질적 공간이다. 공간은 이야기를 가지게 되는 순간 장소가 된다. 우리 주변 평범해 보이는 공간들이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있는지, 어떤 장소로 변모될 수 있는지 탐색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