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2012.12월호 리뷰

#17 2012. 12 더 이상 사진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 장정민

더 이상 사진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현대미술 시간의 풍경들
Landscapes of Moment 확장된 오늘의 사진을 보다
10. 9-11. 25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

글. 장정민 미술평론가

사진은 언제부터 예술로서 인정받은 것일까? 대체 예술사진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더 근본적으로 사진이란 무엇일까? 과거에 비해 사진전이 급격히 늘어나고 전문가들이나 쓸 법한 카메라가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기까지, 오늘날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기 어렵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현대미술 시간의 풍경들>전은 그동안 주목받았던 한국 현대사진들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앞서 언급했던 질문들을 자연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부제인 <확장된 오늘의 사진을 보다>1는 필자가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의 적절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말은 ‘사진다운’ 사진과 ‘사진답지 않은’ 사진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2 따라서 이번 전시에 참여한 21명의 작가들을 통해 오늘날 예술사진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현대미술에서 사진의 역할은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를 위해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질문은 바로 사진다움, 다시 말해 사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탐구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의 『밝은 방(La Chambre Claire)』을 떠올리게 된다.3 실제로 그는 여기에서 사진 자체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본질적인 특징을 지니는지를 밝히면서, 사진이 촬영의 대상이 되는 지시체(referent)와 감광물질을 반드시 필요로 함을 증명하였다.4 무엇보다 그는 사진에서 지시대상의 존재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사진 속 대상이 과거의 특정한 시점에 촬영자와 카메라 앞에 ‘분명히’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회화를 비롯한 다른 시각예술의 매체와는 달리 사진은 지시대상이 없이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5
이렇게 볼 때 이번 전시에서 발견되는 사진다운 사진들은 어떤 것들일까. 오형근과 변순철은 각각 소녀와 전국노래자랑에 참여한 참가자들의 초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와 유사하게 윤정미는 아이들의 초상과 그들의 소유물들을 보여준다. 풍경의 경우 최원준은 일상적 도시 환경 속에서 발견되는 전후(戰後)의 징표들을 담아내며, 변순철은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침투한 인공물을 통해 개발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 즉 이들의 작업은 모두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 사진 속 대상들이 특정한 순간에 작가와 카메라 앞에 존재했음을 증언한다는 점에서 사진다운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사진은 공통적으로 특별히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이는 예술사진이 반드시 아름다울 필요는 없음을 드러냄과 동시에 대중이 예술사진에 기대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6 즉, 이들의 관심은 대상을 특별히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를 점유하고 있는 시대적 징표 혹은 징후들을 사진을 통해 탐구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구도나 프린트 크기의 선택과 같은 이들의 형식적 전략 또한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봉사한다. 일상에서 놓치는 사소한 것들은 이러한 전략을 통해 ‘지금, 여기’를 대변하는 것들로 사진을 통해 제시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진들은 지시대상을 일종의 의미 있는 ‘오브제’로 취급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떠한 대상을 그저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들은 굳이 사진을 선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주 평범한 대상일지라도 그것들은 작가에 의해 선택되고 촬영됨으로써 특정한 의미를 지니게 되며 미술관의 한 공간을 차지하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목격되듯 사진예술은 단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에 안주하지 않는다. 이를 편의상 크게 두 부류로 다시 나눈다면 전자는 촬영 대상에 인위적인 변형을 가하거나 치밀하게 연출된 장면을 재현하는 경우이고, 후자는 타 매체와의 결합이나 사진 자체에 대한 인위적 조작을 적극적으로 가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지시 대상을 기계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사진다운 사진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촬영자가 지시 대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작업들은 대상 자체에 대한 재현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기보다는, 작가의 예술적 실천(practice)을 사진적으로 재현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다시 말해 이 경우 사진은 일종의 조형적 행위와 그것에 담긴 의미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그 자체로도 이미 예술적 산출물이라 할 수 있으나, 그것들은 사진이라는 기계적 재현을 통해 비로소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작품의 지시 대상들이 대개의 경우 일시적이고 다량으로 복제되어 체험될 수 없다는 점으로 인해 사진은 필연적으로 이들을 재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의 사진은 타 매체와의 결합이나 사진 자체에 대한 조작 현상이 두드러진다. 가령 강홍구의 작업은 출력된 사진에 직접 채색을 함으로써 회화와 결합되는 양상을 지니며, 권오상은 미리 만들어 둔 조형물에 사진을 부착함으로써 조각과 결합되는 성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을 통해 조작된 사진 이미지들이 결과물로 제시되는 케이스가 점차 증가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작가들이 제시하고자 하는 의미는 무척 다양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성이나 디지털 기술을 통한 적극적 조작은 실재 같은 가상을 창조하며, 이를 통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고 여겨져 왔던 사진의 신화를 해체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결과물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실재하는 대상을 촬영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상의 존재인 것이다.7 요컨대 이러한 기술의 발달과 맞물려 사진은 원본과 복제의 차이, 더 나아가 실재와 가상의 차이가 무너져 내린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효과적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현대미술 내에서 사진은 표면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현상이 단지 사진의 형식적 다양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통적인 예술사진이 대상에 대한 기계적 재현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면, 이제 사진은 다양한 예술적 실천의 기록 수단이자 그러한 실천의 재료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한 것이다. 사진 이외의 다른 매체를 다루던 작가들이 사진을 작업에 도입하고 그 결과물을 사진으로 산출하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이제 사진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현대미술 작가만이 존재할 뿐.

각주
1. 이는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유명한 글인 「확장된 장에서의 조각(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을 떠올리게 한다.
2. 물론 이러한 구분은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분류라고 볼 수 있으나, 논의의 전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임의적인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밝힌다.
3. 그러나 그의 글에 대해 많은 경우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의 개념에 주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사진의 본질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논의의 핵심도 아니다.
4. 그가 크게 다루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촬영자에 대한 것이다. 사진은 지시대상, 감광물질, 그리고 촬영자의 조합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5. 그림은 대상이 없어도 작가에 의해 재현될 수 있다. 조각을 비롯한 다른 시각예술의 매체 또한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6. 이번 전시에 참여한 김윤호의 작업에서 잘 나타나듯, 인터넷 동호회 등을 통해 나타나는 많은 사진 이미지들은 대개 과장되거나 미화된 것들로써 대중들의 관심이 실재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 자체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7. 김준의 작업에서 도자기로 나타나는 것들은 사실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진 가상의 대상에 불과하며, 이혁준의 작업 또한 그가 촬영한 많은 식물의 이미지들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가상의 숲에 불과하다.